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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깊이

세상의 사막화

인간과 동물이 다른것은 높은 수준의 사고를 하는데 있다.

높은 사고란 작은 범주에서 생존과 관련된 활동을 쉽고 효율적으로 하는 것을 말할 수도 있으며, 큰 범주에서는 같은 종(인간)이 번영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적응방법을 알고 있음을 말하는것 같기도 하다.

다음 아고라에서 조금전에 글을 하나 읽었다. 

8개월된 임산부가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받지 못해서 서러워 울면서 뭔가 자조섞인 푸념을 적은 글 같았다.

하지만 충격적인 것은 아래 달린 답글이었다.

물론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이도 있었겠지만, 어린아이들이라면 더 끔찍하다, 정말로 잔인함이 느껴졌다.

니가 애기 없을때는 자리양보 해봤냐 부터 버스타지말고 자가용타고 다녀라 등. 정말 세상 모든 비난의 화살이 한 곳을 향해 날아가는 듯한

살벌함까지 들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고등적 사고를 자신의 이기와 합리에만 초점을 두고 펼치는 궤변은 그야말로 날카롭고 잔인한 창끝같다.

수많은 범인들이 이러한 창끝에 찔려 오염되고, 아픔을 느끼고 그들과 같은 폭도로 변한다.

검은 잉크에 아무리 많은 흰 우유를 부어도 잉크를 하얗게 만들진 못하지만, 하얀 우유에 잉크 한방울만 들어가도 쉽게 색이 변하듯,

인간은 스스로의 존엄성을 위해서라도 철학이 무엇이고, 인간간의 관계가 무엇인지 기본적으로는 알아야 한다.

철학이 무너지고 유물론적 사고와 좁은 사회관들이 만들어낸 기형적 현상같다. 교육은 이러한 것을 알려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제도

이다. 앞으로 나의 자녀에게 어떻게 세상을 알려줘야 할지 정말 두렵다.

하얀색 우유로 살라 하기엔 세상의 검은 창끝이 너무나 두렵고, 검은 창끝으로 살라하기엔 이질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으니,

나의 범주를 넘어서는 판단이다. 

누군가 말했지만 대한민국의 철학은 이미 죽었고, 그것에 대한 증상이 이렇게 나오는건 아닐까. 철학은 정치와 기득권에서 

만들어내는 패러다임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이미 죽었으니 말이다.

세상에 종말이 온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는 않을것 같다.

신의 심판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스스로를 용서 못하는 일이 앞으로는 많아 질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