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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이야기

[EBS 다큐멘터리] 인간욕망 탐구 - 2부 황금의 비극

세계에서 3번째로 큰 세비야 성당의 중앙제단은 27미터 높이에 전부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많은 황금은 다 어디서 왔을까? 다른 세계에서 유럽으로 모이게 되었다.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처음 스페인으로 금을 신세계로 부터 가지고 온다.

 

신대륙에서의 수익 10%와 자신과 자녀들에게 귀족의 칭호를 주기를 원했고, 이를 수락한 스페인의 황재는 금을 무조건 많이

가져오는것을 조건으로 내 걸었다.

 

컬럼버스의 항해일지에는 금 이라는 단어가 90번 넘게 등장할 정도로 금을 찾아나선 욕망의 탐험이었다.

 

15세기에 스페인의 철기와 총 그리고 잉카의 청동기 무기는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 결국 잉카의 왕이 볼모로 잡히고

잉카의 왕은 금을 5톤을 바치고자 하였다.

 

결국 금이 미지의 땅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때 연봉은 금으로 지급되었는데, 군인의 월급이 선원월급의 180배가 되었다. 결국 정복과 황금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된다.

 

남미대륙의 수많은 스페인금광은 바로 그 역사적 산물인 것이다. 물론 당연히 스페인의 강력한 조정과 인디오의 반항이 생겨났다.

 

일부 남미의 도시는 금광에서 학대와 고된노동과 스페인에서 넘어온 천연두로 인해 70년 만에 2만명의 인구가 140명으로 줄어든

경우도 있었다. 결국 이러한 부족한 노동력을 해결하고자 바야돌리드 논쟁을 가져왔다.

 

부족한 노동력을 바로 아프리카에서 수급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인디오는 같은 종족이고 아프리카인은 동물과 같다는 이론이었다.

 

아프리카 노예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가 노동력이 되었고, 아래 보이는 그 후손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최하층으로 금을 캐며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아프리카의 노동력과 남미지역 인디오들의 노동력은 스페인으로 대량 유입되었고, 이 금은 교회를 장식하는 것과 종교를

지키는 전쟁에 투입되게 되었다. (신교와 카톨릭) 펠리페 2세는 주연이었다. 이시대의...